빚내서 집 사라며?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 발표… 1년 만에 말 바꾼 정부
뉴스일자: 2015년07월23일 16시31분



[아유경제=정훈 기자] "빚내서 집 사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 왔던 부동산 정책을 요약한 말이다. 이 같은 기조가 1년 만에 바뀌었다. 오락가락 정책으로 시장은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이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부양`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정부의 욕심은 자칫 두 마리를 모두 놓치는 우를 범하진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빚 권하는 사회`서 `빚 줄이는 사회`로
`가계 빚 1100兆 시대`… 규제 강화로 `유턴`
원금ㆍ이자 동시에 갚게 하고, 대출은 까다롭게
기획재정부(장관 최경환ㆍ이하 기재부)는 지난 22일 `2015년 제14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번 7ㆍ22대책은 크게 ▲대출 시 원금과 이자를 동시 상환케 하고 ▲대출 심사 시 담보보다는 소득 등 상환 능력을 우선 검토케 한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원금은 나중에 갚고 거치 기간 동안 이자만 갚아 나가는 기존의 대출 구조를 처음부터 빚을 나눠 갚는 방식으로 전환ㆍ정착시키려는 조치로 분석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고정 금리ㆍ분할 상환 대출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고, 은행이 대출 수요자의 상환 능력을 꼼꼼히 심사토록 할 방침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했던 담보대출에 대해 담보 평가 및 담보 인정 기준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사실상 담보인정비율(LTVㆍLoan To Value ratio, 70%)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또 은행권 자본 확충을 유도하고 `유한책임대출` 제도를 오는 12월부터 시범 도입키로 했다. 가계부채 상시 점검반 운영 등을 통해 금융권과 가계의 대응 능력을 제고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한책임대출이란 부도 발생 시 채무자의 상환 책임을 해당 담보물로 한정하는 대출 제도다. 예를 들어 시가 4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2억5000만원을 빌렸는데 집값이 2억원으로 폭락하면 2억원만 갚고 나머지 5000만원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 같은 대책을 내놓은 데에는 그리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데다 중국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세계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대외적인 상황과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으로 내수시장이 위축된 대내적인 요인이 겹친 지금이 위기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 가계 빚 전체 규모가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증가 속도 또한 가파르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연내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이달 9일 발표한 `통화정책방향`과 이보다 앞선 8일 공개한 `2015년 6월 금융시장 동향` 등에 따르면 은행의 가계대출은 올 들어 증가세가 완연하다. 전월 대비 지난 1월 1조4000억원, 2월 3조7000억원, 3월 4조6000억원, 4월 8조5000억원, 5월 7조3000억원, 6월 8조1000억원 등 33조6000억원이나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증가분(37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숫자다. 이 가운데 담보대출이 32조7000억원으로, 전체 증가분의 97.3%를 차지한다.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526조6986억원(주택 담보대출 439조6135억원 포함)을 기록했다. 이미 지난 1분기 말 가계신용(은행권ㆍ비은행권 등 대출을 포함한 전체 빚) 잔액이 1099조3000억원(한국은행)에 달했고, 최근 증가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사상 첫 1100조원 시대에 진입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 같은 상황은 지난 3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연 1%대로 낮춘 것(2.00%→1.75%, 현재는 1.50%)과 무관치 않다. 최경환 부총리 취임(2014년 7월 16일) 직후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7ㆍ24대책(`201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재건축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9ㆍ1대책(`규제 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 회복 및 서민 주거 안정 강화 방안`) 등 규제 완화 기조와 맞물린 영향도 크다.



업계 "단기적으론 효과 `미미`, 장기적으론 악재"… 시장 위축 불가피
하반기 거래 쏠림 가능성 ↑, 전세 및 젊은 층 매수 수요에 `직격탄`
이번 대책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만큼 당장 시장에 미치는 부작용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재개발ㆍ재건축을 비롯한 부동산시장에는 장기적으로 시장 위축 요인이라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이번 대책으로 당장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다를 것"이라면서 "`빚내서 집을 사라`면서 금융 규제를 대거 풀었던 정부의 기조가 180도 바뀐 만큼 앞으로 시장으로 유입되는 유동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부동산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하반기 거래 쏠림 현상과 분양시장의 반사이익을 전망하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사실상의 대출 규제를 핵심으로 하는 이번 대책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만큼 올 연말까지 규제를 피하기 위한 거래가 몰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지난 상반기 분양시장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 전체가 좋았던 탓에 하반기 분양 물량(예정)이 상반기 공급량을 크게 웃도는 상황에서 이번 대책에 따라 하반기에 승부를 보려는 사업장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유관 업계 등에 따르면 다음 달(8월)부터 오는 12월까지 전국적으로 24만여 가구가 분양 예정에 있다. 서울만 37개 단지 3만6000여 가구로 파악됐다. 재개발ㆍ재건축으로 한정해도 지난해 전체를 웃도는 4만9000여 가구가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시장에 풀릴 예정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돈줄을 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기 과열` 때 나오는 조치인 만큼 유동성 장세(흔히 주식시장에서 자금력에 의해 주가가 오르는 현상)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시장에 악재"라며 "단기적으로 봤을 땐 분양시장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통상 건설사가 사 측 신용도에 기한 집단 대출을 통해 중도금 등을 지원하는 구조라 청약자의 개인 신용이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이 같은 대출도 입주 시점에 담보대출로 전환되므로 총부채상환비율(DTIㆍDebt To Income, 60%) 규제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올 상반기 부동산시장은 `돈의 맛`을 제대로 봤다. 가계대출 증가분 중 상당 부분이 시장에 유입되면서 거래량이 늘고 가격도 올랐다. 지난 2분기(4~6월) 서울 지역 아파트 거래량만 하더라도 4월 1만3800가구, 5월 1만2600가구, 6월 1만1300가구 등 매월 1만가구 이상 주인이 바뀌었다. 특히 최근 3개월 새 가장 거래량이 적은 6월의 경우 2006년부터 2014년까지의 같은 달 평균(5800가구)을 크게 웃돌았다.
한편에선 가뜩이나 어려운 전월세시장, 특히 전세 수요자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이주 수요가 커지고 있는 데다 전세 물량이 씨가 마르다시피 한 상황에서 신용대출로 간신히 (재)계약을 체결하며 버티던 전세 수요자들이 대출 규제 강화에 외곽 지역으로 이탈하거나 반전세ㆍ월세로 전환하는 등 주거 불안정 상태로 내몰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1년 전 정부의 말에 귀 기울여 빚을 내 집을 산 젊은 층(특히 1주택자)도 이번 대책의 `피해자`로 꼽힌다. 이자만 갚다가 원금까지 상환하게 되면 당장 가처분소득이 줄어 내수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격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이나 임대 수익을 노리던 다주택자 등도 부동산 기대수익률과 실수익률 간 차액을 임차인에게 전가시켜 임대차시장의 불안과 서민 주거 불안정을 야기할 소지도 커졌다.
유관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대출에 `메스`를 가하려는 정부의 이번 대책을 놓고 "방향은 옳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정책 기조를 뒤집을 만큼 당초 기대대로 부동산 경기가 부양되고 그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부동산ㆍ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늘어만 가는 가계 빚도 잡아야 하고,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 살리기도 포기할 수 없는 정부가 내놓은 고육책"이라 규정하면서 "가계 빚을 줄이려면 가계대출을 조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DTIㆍLTV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애써 살린 부동산시장의 불씨를 꺼트리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정부로선 정책 일관성이 없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같은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그러나 고육책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상해 가면서 낸 계책`인 만큼 정부는 `시장의 신뢰`라는 더 큰 가치를 잃게 됐다. 이는 정부가 추구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공ㆍ노동ㆍ금융ㆍ교육 등 4대 개혁을 비롯한 향후 국정 운영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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