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산 입구에서 만난 빛내림
길을 올라본다. 아침부터 늑장을 부린 탓에 장산 입구에서야 겨우 빛내림을 만났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나 안개가 걷히는 날 산에 오르면 이처럼 가끔 빛내림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장산은 숲이 생각보다 깊다. 소나무 군락지와 낙엽수 그리고 돌시렁 구간이 연이어 이어진다.
오늘은 재송동 장산 동국아파트 옆을 시작으로 체육공원 윗길을 따라 너덜겅 지역을 통과해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중봉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기로 한다. 그리고 다시 정상에서 위봉을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등산로를 따르기로 한다.
▲ 너덜겅 지역을 통과하면서 내려다 본 도심
장산은 너덜겅으로 이루어진 등산로를 통해 시원한 조망권을 자랑한다. 재송동 위편 산자락 능선 길을 이어 탐방하다 보면 너덜겅 지대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는 부산의 도심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훌륭한 경관을 자랑한다. 특히 밤의 야경이 매우 아름다워 광안대교 방향의 너덜겅 지역은 외지인이 즐겨 찾는 야경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장산은 등반이 아닌,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곧장 직선을 이용하여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이용하면 정상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할 만큼 장산은 여러 갈래의 길이 혈관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장산을 오르는 탐방객은 완만한 둘레길을 따라 돌아가는 길을 택하여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이란 공간을 통해 치유하고 있다.

▲ 운무에 가려져 있는 광안대교 방향.
광안대교 끝자락 '이기대'가 흐릿하게 조망된다.

▲ 산불감시카메라로 향하던 옛길 위 2015년 새롭게 조성된 나무데크 계단
장산은 비가 그친 후에 오르면 비구름이 물러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동해로 떠오르는 일출과 하루를 마감하며 금정산 능선으로 사라지는 일몰 그리고 야경이 아름다운 이곳은 늦은 밤 장산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안전에 관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다른 산악지형과는 달리 너덜겅 지대를 많이 통과하는 장산에서는 비가 오거나 습기로 바닥이 미끄러운 날이면 자칫 안전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옥녀봉에서 바라 본 장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 옥녀봉 신도시 방향 갈림길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데크길

▲ 산불감시 전망대 데크에서 바라 본 장산계곡 방향
장산이 부산을 대표하는 산임은 틀림없다. 최근 부산 권역 산의 식물상을 조사한 결과, 장산 권역에서 535종류가 확인되는 반면 백양산은 409종, 황령산 권역은 405종, 영도 권역은 377종이 관찰되면서 부산 장산 권역의 환경생태가 우수한 곳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장산 권역에서는 희귀식물 또한 12종이 확인되었으며, 대천공원에서 150m 오른 지점에는 산림생태관찰센터가 새롭게 생겨나기도 했다.

▲ 산불 그리고 조림지역

▲ 산불감시 카메라로 부터 장산 정상으로 향하는 숲길

▲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라 본 나무데크 건너편 옥녀봉

▲ 정상으로 향하는 산불감시카메라 나무데크 길에서 바라 본 신도시 방향

▲ 정상에서 바라 본 해운대 센텀방향
협곡 사이로 벡스코 건물과 광안대교가 바다를 연결하고 있다.

▲ 장산 정상석.
실제 정상은 군부대가 위치하여 군부대 철책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을 하고 있는
해운대 방향에 임시 정상석을 두고 있다.

▲ 장산 정상에서 바라 본 동래구 방향.
제일 뒷산이 금정산 능선이다.

▲ 동래 충렬사 전경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내던진 민관군의 영령을 모신 곳으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다. 조선 선조 38년(1605) 동래부사 윤휜이 처음 동래읍성의 남문 내 충렬공 송상현을 모시고 '송공사라 불렀으나, 인조 2년(1624) 충렬사 사액을 하사받고 효종 3년(1652)에 오늘날의 자리로 옮겨와 사원과 서원의 역활을 하고 있으며, 매년 5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

▲ 동래읍성지가 위치한 동래 복천동 마안산
동래는 동쪽의 내산(箂山) 즉,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의 줄임말로 해석하고 있다. 동래는 삼한 시대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을 시작으로, 신라 경덕왕 16년(757) ‘동래군’으로 최초 부르게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패전지라는 이유로 현으로 격하되기도 하였으며, 오늘날 남구, 해운대구, 금정구, 연제구로 분리되고 남은 지역이 바로 동래구이다.
동래 읍성지는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호로, 동래구 복천동, 안락동, 명륜동, 칠산동, 명장동 일대의 조선 시대 동래부를 둘러싸고 있던 읍성이었다. 안내글에 의하면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 형식으로 쌓았다 고 한다.

▲ 멀리 연산동 방향에서 조망되는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고분군 전경
고분은 낙동강 하류 지역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유일한 고총 고분군으로
국내 가장 큰 수혈식 석곽묘가 확인된 곳이다.


장산 너덜겅을 걷다 보면 너덜겅 주변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제당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마고단'으로 마고영신, 신왕대신 신위를 모시고 있다. 모신 신들은 어쩌면 옛 이곳에 터를 잡고 세력을 키웠던 장산국의 시조가 아닐까 싶다. 너덜겅 지대를 조금 더 오르면 하늘에 제를 지내던 천재단을 만나게 된다. 장산에는 다른 산과는 달리 천재단, 마고단, 산신단이 자리하고 있다. 장산에는 장산국이 존재하였는데, 오늘날 등산로가 어쩌면 옛 장산국 사람들이 걸어 이동하던 옛길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장산국은 신라 탈해왕에게 토벌되면서 거칠산군으로 합병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