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유준상 기자] 롯데 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창업주인 아버지가 자신을 밀어주고 있다는 장남과 형이 고령의 아버지를 이용하고 있다는 동생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 가운데 기업의 국적 논쟁과 더불어 독단적인 `황제경영`의 폐해 등이 고스란히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신격호 롯데 그룹 총괄회장이 한국 롯데 그룹 회장을 바꾸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의 육성 녹음이 지난달 31일 공개된 데 이어 이달 2일에는 그가 "차남(신동빈 한국 롯데 그룹 회장)을 한국 롯데 그룹 회장에 임명한 적이 없다"고 발언한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되기까지 했다.
신동빈 회장은 3일 일본에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해 이번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나아가 이날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이 머무르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찾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한편 형인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일본으로 출국, 롯데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광윤사와 우리사주 등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들을 만나 임시 주총을 준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등 세 부자 간 대립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달 27일 신 총괄회장이 자신을 제외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하면서 비롯됐다. 해임된 6명 중 신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한국 롯데 그룹 회장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이 같은 행동을 둘러싸고 두 형제의 입장은 첨예하게 엇갈렸다.
우선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추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해임 지시를 듣지 않으니 일본에 와서 결정을 전하려고 한 것"이라며 "중국 사업을 비롯해 한국 롯데의 실적을 아버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신 회장이 한국과 일본의 양쪽 롯데의 경영을 모두 맡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것도 신 총괄회장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 회장은 "아버지가 형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일부 친족들이 고령으로 거동과 판단이 어려운 총괄회장을 임의로 모시고 가 구두로 해임 발표를 유도한 것"이라며 "구두 해임은 이사회 등 적법한 절차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이뤄진 것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도 이 같은 점을 이해하고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중국 사업에 대한 주장과 관련해서도 "롯데 그룹의 중국 사업 투자는 5~6년 전 시작 단계부터 신 총괄회장의 보고 및 지시에 따라 투자 방향과 규모가 결정돼 추진돼 왔다"며 "보고가 누락되거나 거짓 보고가 있었다는 부분은 전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의 이 같은 이사 해임 결정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해임된 다음 날(지난달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열어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전격 해임했다.
이에 당시 언론들은 "`롯데가(家) 왕자의 난`이 하루 만에 실패했다"는 내용으로 보도하며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의 승리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입국한 이후 아버지인 신 총괄회장 내외,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 삼촌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등이 잇따라 입국하면서 신 전 부회장 지지 세력이 결집하는 모양새가 빚어지면서 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이후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해임 지시서`와 음성 메시지, 영상 등을 공개하면 신동빈 회장 측을 압박하자 신 회장 측이 이에 반발하는 형태로 이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형제의 난`을 바라보는 업계와 국민의 시선은 부정적이다. 형제들이 아버지의 행동을 모두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면서 창업주와 그룹 전체를 욕보이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롯데의 경우 작년 말 기준으로 자산이 93조원에 달하며 재계 랭킹 5위, 매출액 70조원이 넘는 초대형 기업이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국내 재벌가의 후진적 지배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특히 소수 지분으로 대기업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독식경영`이 롯데 그룹 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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