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8%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찬성한 것과는 정반대로 한국노총이 조합원 10명 중 8명은 '임금피크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그런데 이번 결과는 설문조사 방식에서부터 현장 근로자의 목소리를 담지 못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13~18일 노총 산하 단위 노조 1000여 곳에 '팩스'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중 팩스가 설치된 단위 노조(622곳)에서 답변이 왔다고 한다. 설문조사 작성자는 대부분 단위 노조 간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조합원 62명(10.0%) 전원(全員)은 임금피크제가 '60세 이후' 적용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인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자는 기존 한국노총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결국 정년 60세까지는 호봉제 등 기존 임금 체계를 유지하되 법적 정년 이후에도 근로하는 사람에 한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자는 것이다. 내년부터 정년을 60세로 못 박되, 50대 중반 이후에 임금피크제를 하자는 정부·기업의 생각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임금피크제란 무엇인가.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는 제도다. 일자리 나누기(work sharing)의 한 형태로, 일정 연령 이후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장기근속 직원에게 임금을 줄여서라도 고용을 유지하는 능력급제의 일종이다.
즉, 일정 근속년수가 되어 임금이 피크에 다다른 뒤에는 다시 일정 비율씩 감소하도록 임금체계를 설계하는 것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공무원과 일반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교원 정년 단축으로 백지화되었다.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임금피크제는 크게 정년보장형, 정년연장형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의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들은 정년보장형을 채택하고 있다. 이 유형은 정해진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정년까지 임금을 삭감한다. 정년보장형 임금피크제는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 안정을 원하는 근로자에게 현실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과 기업에게는 고용 조정에 따른 부담감과 인건비 절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업 내 인건비 절감이나 인력구조 변경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고 자칫 정리해고의 대체수단으로 사용될 여지가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우리나라의 극히 일부 기업 및 일본의 대부분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유형은 정년을 기준으로 한 노동력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다시 노동력에 재투입하여 은퇴 예정자(고령자)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정년에 도달한 은퇴 예정자를 재취업의 어려움 및 신규 노동시장에의 진입을 감안하여 임금수준을 정하고 연장 고용한다. 이는 관련 직무에 익숙한 근로자를 계속 활용함으로써 신규 근로자의 채용과 적응에 수반되는 비용을 절감하고 근로자 개인에게 근로의 기회를 지속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임금피크의 시점 및 임금 감액 비율의 결정 기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고 제반 조건에 대한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자리 창출이 없는 저성장과 높은 청년실업률, 그리고 정년 이전에 조기 퇴직하는 준고령자 실업문제와 고령화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인구구조와 산업인력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며, 이를 통해 고령화에 따른 문제점을 일정 부분 해결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90만 명이 넘는 한국노총 조합원은 청년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정규직이 많다. 이번 설문조사에 참여한 단위 노조도 사무·금융·공공 부문이 43.8%, 제조업이 26.4% 등으로 대부분 대기업 정규직이다.
한국 노동 시스템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20대 비정규직만 110만명인 상황에서, ‘임금피크제’는 장년 세대가 청년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청년들에게는 정규직으로 가는 벽이 턱없이 높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눈물짓는 청년들이 장년 대기업 정규직을 대표하는 한국노총의 이런 생각을 보면 깊은 한숨을 지을 것 같다.
기업의 강압에 의한 구조조정으로 명퇴, 조퇴의 길을 선택했던 이들을 생각해 보면, 정년이 보장되고 정년에 이르는 일정기간 동안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과 장년들의 양보로 패기 넘치는 젊은 청년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기업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고, 노동자는 조금은 손해이나 정년이 보장된다는 임금피크제를 수용해야 한다.
정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기 보다는 노동단체에서 먼저 ‘임금피크제’에 대한 이해와 동조를 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 젊은 청년들이 대망을 펼칠 수 있도록 조금의 여유와 배려가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