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처를 위해 다음주로 예정된 방미 일정을 연기한 것을 두고 정치권이 "메르스 극복에 국력을 모아야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다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한미간 외교적 손실이 없어야 한다"고 주문했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 건강을 더 챙기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환영을 표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이 14일로 예정했던 미국 방문을 연기한 것은 메르스 사태가 국민들에게 끼친 사회, 경제, 심리적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대통령이 중대한 결심을 한 만큼 메르스 사태를 극복하는데 온 국력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역시 현안브리핑에서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 대응에 신뢰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이언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도 "어제 최고위원회에서 지적한대로 국민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며 "늦었지만 방미를 연기하고 국민 건강을 챙기기로 한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의 성공회대성당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행사장에서 방미 연기 소식을 접한 뒤 기자들에게 "국민 안전에 대한 걱정과 메르스 상황에 비춰보면 잘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하루 이틀 메르스 경과를 보면서 메르스가 더 확산되는지 또는 진정되는지를 보면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잘한 결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14∼18일로 예정됐던 미국 방문을 연기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인한 국가적 불안감이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방문길에 오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미국 방문이 북한의 계속된 도발 위협과 극에 달한 공포정치 등 불안한 북한 내부 상황, 미국과 일본의 '신밀월' 시대 개막 및 이들 두 나라와 중국 사이의 갈등 심화까지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국익 차원이나 우리 외교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음에도 국민 안전에 직결된 문제를 방치한 채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실제 이날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박 대통령의 방미 관련 여론조사(8∼9일, 성인 7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7%포인트) 결과 순방을 연기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53.2%, 예정대로 순방을 가야 한다는 응답자는 39.2%로 나타나 박 대통령의 방미 연기 결정은 이러한 여론에 호응한 모양새가 됐다.
다만 이번 방미 연기로 인해 자칫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번 미국 방문이 한미 양국이 수개월 전부터 두 정상의 빠듯한 일정을 맞추고 의제를 협의한 결과 도출된 것임에도 한국이 국내 사정을 이유로 연기한 것이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수석도 "사전에 미국 측에 이해를 구했으며, 향후 한미 간에 상호 편리한 가장 빠른 시기로 방미 일정을 재조정하기로 합의했다"며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이 연기됐다고 해도 미국 측과 이번 방문의 주요 안건인 한반도 정세 관리 및 동북아 외교안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경제협력과 한미간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당시 세월호 참사 당일 미국 백악관에 게양됐던 성조기와 백악관 뜰에 심어진 목련 묘목을 전달하는 등 깊은 위로를 전달하며 우애를 과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방미 연기로 관계가 틀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기우라는 분석도 있다.
결국 양국의 관계가 여전히 굳건함을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빨리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다시 잡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우리 사정을 이해하고 연기 요청을 받아들인 만큼 앞으로 방미 일정을 조속히 잡으면 그만큼 한미동맹이 더욱 공고하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