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한 초등학교의 5학년 담임 김모(31) 교사는 올해 1학기 '갈매기의 꿈'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과제를 냈다. 과제 검사를 하던 김 교사는 누가 누구 것을 베꼈는지 도통 구분이 안 되는 독후감 두 편을 발견했다. 워드프로세서로 쓴 두 학생의 글은 '한계'를 '한게'로 잘못 쓴 것까지 똑같았다.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원본으로 짐작되는 글이 있는 한 블로그가 검색됐다. 그 일 이후 숙제를 손으로 직접 쓰게 하고 있지만 한 반 26명 중 2~3명의 숙제가 붕어빵인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요즘 '표절과의 전쟁'중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접하다 보니 표절에 대한 아이들의 무감각이 도를 넘었다"고 혀를 찼다. 실제 한 대형 포털 사이트 지식 답변 코너 '초등 교육' 분야에는 숙제를 베끼려는 초등학생의 글이 하루에 수백개씩 올라온다. 주로 4~6학년들의 글이다. 예컨대 '12女인데요. 내일까지 사회과탐구 39쪽을 해오라네요. 2012년 5학년 2학기 사회과탐구 39쪽 좀 알려주세요'라는 글이 오른다. 39쪽은 정족산성과 신미양요 이야기가 나온다. '신미양요―자신들이 잘못한 사건을 빌미로 통상을 요구하며 백성들을 괴롭히다니! 이렇게 난폭하고 무례한 서양과는 절대로 통상할 수 없다!'는 답변이 달린다. 아예 교과서를 사진으로 찍어 올려 숙제를 해달라는 경우도 있다.
하도 많은 학생이 같은 숙제를 검색하다 보니 이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5학년'이라고 치면 '5학년 2학기 사회 55쪽' 등의 자동 검색어가 수십개 뜬다. 토론 주제만 올리면 찬반 논리와 근거 자료가 올라오고, 책이름을 대면 베끼기용 독후감이 댓글로 달린다. 답변을 얻은 학생은 '빠르고 좋은 답변 고맙습니다. 졸× ㄱㅅ(정말 감사하다는 뜻)'라고 답글을 단다. 누군가 잘못된 답변을 올리면 각 학교 교실마다 오답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한번은 검색 결과 중에 오답이 있어 학생들이 낸 답이 다 똑같이 틀리기도 했다"며 "반성문을 받고 숙제를 다시 시켰지만 교사가 일일이 잡아내기엔 역부족"이라 했다. 초등학생 남매를 둔 강모(36)씨는 "포털에 클릭만 하면 자료가 수백개 쏟아지더라"며 "내용을 물어보면 정작 아이들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 '숙제'가 '검색질'로 바뀌었단 생각이 든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실까지 표절에 물드는 상황에 정부가 '표절 방지 조기 교육'을 도입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오는 11월부터 학생이 지켜야 할 '학습 윤리'를 담은 전자책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보급해 교육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박은우 한국연구재단 학술진흥본부장은 "연구자에게 '연구 윤리'가 있다면 학생들에게는 '학습 윤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연구 윤리는 개인의 인식 및 관행과 직결되는 것이라 나중에 가서 바로잡으려 해봐야 늦고 미래 세대인 초등학생부터 조기 교육을 통해 표절은 안 된다는 신념을 정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등으로 구성된 표절 방지 전자책에는 인터넷에 나온 글을 베껴 대회에서 상을 탄 학생, 방학숙제 대행 사이트 등 실생활과 밀접한 표절 사례가 등장한다. 학생들은 제시된 사례에 대해 토론한 뒤 직접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바뀐 시대상도 반영했다. '무조건 베끼지 마라'는 게 아니라 자료를 참고할 때는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하고 공동 보고서는 '조원들 간의 공정한 합의를 거쳐 기여도에 따라 저자를 밝혀야 한다'고 제시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폭력 방지 교육, 사이버 폭력 예방 교육은 많았지만 표절 예방 교육은 처음"이라며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정보를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수집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숙제를 낼 때 가능하면 인터넷에 없는 내용을 내고 학생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로 다른 과제를 내주고 있지만 힘에 부칠 때가 많다"며 "표절을 쉽게 여기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